[이코노미조선]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 "세계 500대 기업 중 한국기업이 45개는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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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리더 인터뷰 <2>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
“15개인 우리나라 세계 500대 기업수 적어도 45개 돼야
‘글로벌 경쟁력 향상’으로 경제 정책 근본 방향 수정해야”



송병락 자유와창의교육원 원장은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경제 성장에서 대기업이 수행하는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C영상미디어 한준호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면 경제 정책의 근본 방향을 기업과 산업 구조조정이 아닌 글로벌 경쟁력(Global Competitiveness) 향상으로 바꾸는 게 가장 시급합니다.”
송병락 자유와창의교육원 원장은 우리나라 경제에 드리워지고 있는 저성장 공포를 돌파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로 ‘글로벌 경쟁력 향상’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게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가의 기업 의욕과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을 고취하는 한편, 속칭 ‘김영란 법’이라든가, 정치인의 잘못된 경제 정책 구호 같은 경제 불안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송 원장은 1980년부터 2004년 8월까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부총장으로 봉직한 학문이론과 실물경제에 모두 정통한 몇 안 되는 한국 경제 전문가로서 ‘한국적 경제학’ 정립에 매진해왔다.

그는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대기업 중심 성장론을 주창해오고 있다. 미증유의 리더십 위기와 불확실성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 44층에 있는 자유와창의교육원 원장실에서 송 원장을 만났다.

지금도 대기업이 한국 경제의 견인차라고 보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70~80년대에 걸쳐 한국의 살길은 대만 같은 중소기업형 경제라는 주장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양국의 경제는 어떤 상태인가요. 한국은 대기업 중심의 투자로 반도체·스마트폰·가전·자동차·조선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기업을 갖춘 반면, 대만 경제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이지요.

올여름 타이완에서 열린 한국-대만경제협력위원회에 참석한 한 저명 대만 경제학자는 ‘대만은 한국의 삼성·현대차·LG·SK 같은 대규모 국가대표 기업들이 없는 게 큰 문제다. 대규모 국가대표 기업들이 한국의 국력인데, 이를 일으킨 한국의 기업 전략이 놀랍다’고 부러워하더군요.”




현재 한국에서 국가대표급 대기업은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글로벌 대기업 판도는 미국 <포천(Fortune)>이 매년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 순서가 가장 폭넓고 정확합니다. 올해 발표된 <포천>의 500대 기업 순위를 보면 미국이 134개로 가장 많고 다음은 중국(103), 일본(52), 프랑스(29), 독일(28), 영국(26)순입니다. 이는 글로벌 경제에서 해당 국가가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공신력 있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국(15)과 스위스(15)는 500대 기업 숫자가 같습니다. 한국의 인구는 스위스보다 6배나 많은데도 말입니다.

스위스가 세계에서 시장경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나라라는 걸 감안해도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스위스 수준이 되려면 500대 기업수가 90개(6배) 이상이 돼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최소한 한국 국적의 세계 500대 기업 숫자가 지금의 3배인 45개 정도는 돼야 한다고 봅니다.”

대기업 성장세가 주춤해지는 상황에서 ‘창업 국가’인 이스라엘처럼 중소-중견기업과 스타트업을 많이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무조건 대기업만 키우는 게 아니라 산업 특성에 따라 중소기업을 집중 육성하거나 대기업을 키워야 하는 산업이 있다고 봅니다. 중소기업을 키우기 위해 강력한 대기업이 필요한 산업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자동차 산업이죠. 최근 대구에서 대구와 경북 지역 자동차 부품 업체 CEO들을 만났는데 CEO 한 분이 ‘일대에 자동차 부품 회사만 4000여개가 있다’고 말하더군요. 자동차 부품이 2만개가 넘는 데 이걸 공급하기 위해선 수천곳의 중소 협력 업체들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세계적인 자동차 대기업 없이 그 많은 중소기업을 어떻게 육성할 수 있을까요. 자동차 부품 중소기업을 만들겠다고 정부가 수십년간 예산을 지원한다고 해도 수천개의 기업을 만드는 건 불가능할 것입니다.”

송 원장은 여기서 중국의 병법서인 <손자병법>에 나오는 ‘우직지계(迂直之計)’를 원용해 비유했다.

“중소기업을 직(直)으로 육성하는 것보다, 대기업을 키워서 중소기업을 우회적으로 육성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예컨대 포스코 같은 대기업이 잘되면 포스코 제품을 활용한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이 많이 생긴다(후방연쇄효과). 그리고 포스코에 원료를 납품하는 중소기업들도 많이 생기게 된다(전방연쇄효과). 그런데 이런 중소기업들은 모두 포스코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포스코 없이 이런 중소기업만 만들어서 성장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런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길은 포스코라는 대기업을 육성해서 우회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많아야 중소기업들도 많아지고 더 발전할 수 있다.”

청년 실업이나 고용 문제도 대기업을 더 많이 키우면 해결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습니다. 21세기 글로벌 경쟁 시대는 초대형 기업, 즉 메가(mega) 기업들 간의 경쟁 시대입니다. 최근 동종 기업인 다우케미컬과 듀폰이 합병하고, 일본 자동차 기업과 중국 철강 업체들이 연이어 합병을 통해 대형화를 시도하는 게 이를 입증합니다. 이런 글로벌 경쟁 시대에는 메가 기업이 많아야 합니다. 중소기업이 메가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은 미국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선진국에서도 어려운 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인 미국 월마트는 230만명의 임직원을 두고 있습니다. 우리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처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메가 기업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송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종업원 규모 300명 이상 대기업 3456개가 고용하고 있는 종업원 총인원은 270만명에 불과하다”며 “한국의 대기업은 글로벌 기준으로 보면 그 규모가 아직도 작은 편”이라고 말했다. 또 “ <포천>이 분류하는 산업의 수는 53개인데, 한국 글로벌 대기업이 하는 산업은 9개에 불과하다”며 “44개 산업에는 500대 기업이 아예 한 개도 없다. 이런 분야에 글로벌 대기업이 있어야 그 소속 산업도 글로벌 수준으로 발전한다”고 했다.

한국 경제의 앞날을 위협하는 중대 위험 요인 세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입니까.



“총과 칼만 없지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글로벌 경제 싸움터에서 기업의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업가(企業家)야말로 시장경제의 리더이자 현장 사령관입니다. 그런데 기업과 시장경제의 역할을 이해하는 우리나라 정치인을 찾기 힘듭니다. 정치인들이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모르고 대기업 규제, 경제 민주화 등 각종 반(反)시장적 경제정책을 주장하는 바람에 경제 불안이 심화되고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업 경쟁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장기적인 경제 비전이나 정책 방향을 세우지 못한 채 대증요법(對症療法)적인 처방이 난무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중국의 견제, 선진국 보호무역주의 같은 대외 경제 환경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 유통 대기업 월마트는 23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종업원 300명 이상 대기업들의 총 임직원 수(270만명)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블룸버그 제공


우리나라에 월마트 같은 글로벌 대형 기업, 메가 컴퍼니가 생기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가장 큰 이유는 갈라파고스 규제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수도권 규제, 대기업 집단 규제, 금산(金産) 분리 규제, 경영권 승계 규제, 중소기업 적합 업종 제도 같은 규제가 난무하고 있지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규제가 최소 7가지입니다. 여기에다 법안 제정권을 가진 국회에서 무차별적으로 대기업 활동을 옥죄는 법안을 남발하고 있으니 있는 기업도 제대로 비즈니스하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송 원장은 또 “우리나라에서는 중소기업이 성장해서 중견기업이 되면 중소기업 지원 정책 57개가 사라지고 70여개의 새로운 규제를 받게 되며, 대기업으로 성장하면 또 다른 80여개의 새로운 규제에 치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이어지는 성장의 고리가 단절될 수밖에 없고, 성장을 꺼리며 중소기업 상태에 안주하려는 현상이 번져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재벌가의 3, 4세 세습 경영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김대중(DJ) 정부 시절 재벌 해체론이 한동안 횡행했고 지금도 한국 대기업 경영을 전문경영인 체제 또는 오너 경영으로 가야 한다는 갑론을박이 많습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사태 이후, 그 이전에 있었던 30대 대기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때 얘기 대로 재벌(대기업)을 모두 다 해체했더라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이런 문제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정답이 없는 게 정답이고, 유일한 규칙은 규칙이 없는 것입니다. 마오쩌둥이 ‘싸움터에 들어설 때는 모든 병법을 다 잊어라’라고 말했듯이, 경제 전쟁터에서도 어떤 하나의 정답 시스템은 없습니다. 그럼 어느 것이 기준인가. 저는 ‘제품의 글로벌경쟁력(GC)이 유일한 기준이자 정답’이라고 봅니다. 즉 세계 최고의 자동차, 세계 최고의 선박,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는 회사의 조직이나 경영은 어느 것이나 옳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나라는 기업 집단 해산 또는 전문경영인 체제 정립 같은 논의에 너무 많은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며 “‘흐르는 물에는 하나의 고정된 형태가 없고 싸움에도 고정된 동일한 세력은 없다(水無常形 兵無常勢)’는 <손자병법>의 말처럼 경영에도 한 가지 고정된 정답이나 체제는 없다고 보고 접근하는 유연한 자세가 아쉽다”고 했다.

경제 발전과 경쟁력 확보에 전략은 어느 정도 중요합니까.

“기업의 경쟁력은 자본, 노동 같은 생산요소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생산요소를 어떻게 결합시켜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죠. 결국 기업 경쟁력은 의사 결정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사 결정은 무조건 하던 일을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남들과 다르게 차별화하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때만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경쟁력 확보는 계속해서 뛰어난 전략을 채택하고 수행할 때 가능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전투적 의사 결정’과 ‘전략적 의사 결정’은 다르다는 겁니다. 19세기 미국 인디언들은 뛰어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여러 무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뤘죠. 수많은 서양인이 인디언에게 죽음을 당했고요. 그런데 지금 인디언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숫자가 줄어든 민족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왜 싸워야 하고 누구의 편에서 싸워야 하는지의 물음에 잘못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죠. 전략이 없으면 전투에서 이기고도 전쟁에는 질 수밖에 없습니다.”

송 원장은 “기업들도 단순히 설비 투자를 많이 하거나 원가를 깎는다고 성장하는 게 아니라 독창적인 전략으로 다른 기업과 차별화에 성공할 때만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처럼 글로벌 경쟁 강도가 높아질수록 기업가들이 손자병법 등 군사 전략을 숙지해야 할 필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 Plus Point
손자병법’ 50년 넘게 탐독
송병락 원장은 지난해 출간한 <전략의 신(神)>을 비롯해 10년 넘게 전략 연구를 하고 있다. 경제학자가 전략 문제에 천착하는 이유와 관련해 그는 “1963년 대학 졸업 후 미군 통역 장교로 군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살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를 매일 곱씹으며 <손자병법>을 읽은 게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송병락 원장은 전략가가 되려면 유연한 사고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 C영상미디어 한준호


그는 “당시 미군에 비해 한국군은 봉급은 물론 보급품 등이 형편없어 열패감에 시달렸다”며 “미국 유학 갈 때 수화물로 <손자병법>과 <성경>, 영어사전 세 권만 들고 갔는데, 당시 해운 여건상 몇 달째 한국에서 부친 짐이 오지 않아 <손자병법>을 수십번 읽게 됐다”고 했다.
송 원장은 1970년 남캘리포니아대(USC) 대학원에서 ‘지역경제 성장 이론: 성장 극점과 개발 축(A theory of regional economic growth: growth poles and development axes)’이란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손자병법>의 ‘전략적 사고’와 ‘차별화 전략’을 십분 활용해 석박사 학위 정규 과정을 2년 반 만에 끝냈다.

‘손자병법’의 핵심은 유연한 사고

“학교 기숙사에서 매일 저녁 6시쯤 저녁을 해먹고 다음 날 오전 8시까지 책상에 앉아 논문 작업에 몰입하다 보니 기적적으로 일찍 논문을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경제학계 최고 저널인 에 단독 논문을 발표했으며,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에서 낸 영문 단독 저서를 포함해 총 17권의 저서를 냈다. 3권은 중국에서 중국어로 번역돼 팔리고 있다.

그는 한국 기업인들에게 <손자병법> 학습을 권하면서 <손자병법>에서 체득할 대표적인 전략으로 3가지를 꼽았다. 본연의 기술인 ‘정(正)’에 상대가 예상하기 어려운 변칙인 ‘기(奇)’를 더해 승부를 겨루는 기정(奇正) 전략과 상대의 강점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융합 전략, 상대의 강점을 허무하게(虛) 만들고 나의 약점을 알찬(實) 무기로 바꾸는 허실(虛實) 전략이다. 송 원장은 “우리나라 리더들은 전투에 강하면서 전략에 약하다”며 “뛰어난 전략가의 첫 번째 조건은 ‘유연한 사고’이며 고정된 틀에 박힌 생각만 해서는 어떤 전략도 무용지물”이라고 말했다.


출처: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0/31/20161031012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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