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섭 보훈처장 “보훈은 국민통합의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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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장관급 부서 승격으로 위상 높아진 안주섭 국가보훈처장… “올해 역점 사업은 제대군인 지원” 글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 사진 강재훈 기자 khan@hani.co.kr “생각하면 할수록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안주섭(57) 국가보훈처장이 밝힌 부서 승격 소감이다. 국가보훈처가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차관급 부서에서 장관급 부서로 승격됐다. 안주섭 처장과 보훈처 공무원들은 지난 1년 동안 보훈처 승격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도와주셔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제245회 임시 국회 마지막 날인 3월2일 통과했다. 만약 하루라도 늦어져 국회 통과가 지연됐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다.” 3월2일 관련 법안이 임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면, 보훈처 승격은 대통령 탄핵 소용돌이에 휘말려 물거품이 됐거나 한참 뒤로 미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부서 승격 뒤 보훈처 공무원들은 안 처장을 ‘처장님’이 아니라 ‘장관님’이라고 호칭한다. 안주섭 처장은 장관급 승격이 보훈처 공무원들의 잔치에 그칠 게 아니라 국가 유공자의 명예와 자긍심을 더욱 높이고 국가보훈이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부서 승격은 경사인데, 국가보훈처가 뭘하는 곳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첫 질문을 꺼냈더니 안 처장도 “솔직히 나도 전에는 잘 몰랐다”고 웃으면서 털어놨다. 육군 장성 출신으로 군 생활을 오래했지만 현역 시절에는 자기 일을 하느라 바빴고, 알 기회도 없었다고 했다. 김대중 정부 때 청와대 경호실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3월3일 국가보훈처장에 취임했다.


안 처장은 “하지만 국가기본정책으로서 보훈은 알면 알수록 중요한 일이더라. 보훈은 국민을 통합하는 정신적 사회적 인프라”라고 강조했다. 안 처장은 “지난 40년 동안 국가보훈의 제도적 기반을 만들고 보상 지원을 향상시키는 등 보훈의 기본 틀을 짰지만 보훈에 대한 국민 인식은 낮은 편이다. 일반 국민, 특히 젊은 계층은 보훈대상자를 존경하고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구호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도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보훈=상이군경 돕기’ 인식 안타까워 국가보훈처의 뿌리는 1961년 상이군경, 전몰 유족 원호를 위한 군사원호청이다. 1985년 ‘원호’에서 ‘보훈’으로 개념을 바꾸면서 부서 이름이 국가보훈처로 바뀌기는 했지만, 아직도 국민의식은 ‘보훈=상이군경 돕기’에 머물러 있다.


안 처장은 보훈의 중요성을 여러 번 되풀이 설명했다. 국가보훈은 헌법 전문에 담긴 조국독립·국가안보·민주발전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희생하거나 공을 세운 사람을 예우하는 제도라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조국 광복에 기여한 순국 선열·애국지사, 국가수호에 이바지한 전몰군인·경찰, 전상군인·경찰, 참전유공자, 민주발전에 기여한 4·19혁명 유공자, 광주민주유공자 등이 보훈대상자이다.


“보훈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사람을 국가가 끝가지 책임진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상징적인 약속이다. 보훈은 국민통합과 국가 정체성과 직결된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한 응분의 예우를 함으로써 국민의 애국심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건강한 공동체를 지키고 가꿀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통합을 이야기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탄핵 정국 뒤 벌어진 상황이 빠질 수 없었다. 하지만 안 처장은 “나는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은 잘 모르고 보훈정신을 이야기하겠다”고 피해갔다.


하지만 보훈 업무가 최근 사회 변화와 갈등과 무관할 수 없다. 우선 보훈 대상자 총 68만2천 가구 가운데 95%가 참전 관련 유공자로 남북관계 변화에 민감하다. 이들은 남북 화해 협력으로 보훈 대상자에 대한 국가의 관심이 소홀해졌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정부 때 보훈 대상의 확대, 보상 수준의 향상 등 지원 내용은 크게 좋아졌지만, 보훈단체와 재향군인회 등은 보훈처가 차관급 부서로 격하되자 이를 보훈 대상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보훈 대상자 가운데서도 참전 관련 유공자와 민주유공자 같이 공헌의 원인·성격·정도가 다른 사람들끼리 공헌의 우열과 보훈 내용을 둘러싼 갈등도 벌어진다. 특정 세력이 자신들을 보훈 유공자에 넣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항일 · 참전 · 민주화운동은 하나의 정신 “시대 상황에 따라 보훈 대상은 계속 넓어지고 있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의병 등 반일 독립운동이 나라 찾기였다면, 6·25 등에 참전한 군경들은 나라를 지켰다. 4·19혁명과 광주민주유공자는 나라 만들기에 나선 분들이다. 이들이 추구한 독립·호국·민주정의 정신은 국민통합의 토대가 된다.” 안 처장은 지난해 취임초부터 국민통합 차원에서 독립·호국·민주정의 정신를 한덩어리로 묶는 일을 벌였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고 한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세 가지 정신의 공통점을 ‘자유민주독립국가’라고 보고 있다. 각 유공자들도 서로의 가치를 인정해주면 좋겠다. 자기 것만 소중하고 인정해달라고 할 게 아니라 독립된 가치에 대해 상호 존중 정신이 필요하다.” 안 처장은 앞으로 정책 방향에 대해 △보훈 체계를 미래지향적 체계로 개편 △적정한 보상과 예우로 보훈 가족의 질 높은 삶 보장 △혁신적인 제대군인 지원체계 마련 △내실 있는 나라사랑운동 전개 등을 꼽았다. 이를 위해 보훈 대상의 범위, 보상 원칙 등 보훈의 기본 원칙을 규정하는 총괄 규범 성격인 ‘국가보훈기본법’을 올해 안에 만들 계획이다.


국가보훈처는 합리적인 보상금 수준과 지급 체계를 만들기 위해 보훈 대상자 전수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현재 가장 심하게 다친 상이군경에 대한 최고연금이 도시 가구 소비지출의 83%(월 145만3천원)이다. 기초생활보장, 장애·노인복지시설이 확대되면서 보훈대상자들은 “국가가 보훈 대상자를 제대로 예우하지 않는다”며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 처장은 “보훈 대상 등록가구가 계속 늘어나고 고령화로 의료·주거 시설 지원 등 노후 복지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에 800병상 규모인 서울 보훈병원을 2천 병상으로 늘이는 연구용역을 맡겼다. 내년 예산이 확보되면 병원 확장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대군인지원센터’통해 취업 지원 올해 국가보훈처가 역점을 두는 사업이 제대군인 지원 업무다. 제대군인을 국가와 사회발전의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안 처장은 “나도 오랫동안 군 생활을 했지만 군 생활을 오래하다보면 사회에 나와 적응하는 게 쉽지 않다. 10년 이상 장기복무한 군인을 대상으로 이들이 제대 뒤 사회에 연착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먼저 제대군인을 20년 이상 장기복무자와 10~20년 미만 복무자로 나누어 지원할 계획이다.” 국가보훈처는 2월20일 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전역 뒤 진로상담과 취업·창업지원을 전담하는 ‘제대군인지원센터’(전국 대표전화 1588-2339, vnet.go.kr)를 운영하고 있다. 제대군인지원센터는 상담팀, 취업지원팀, 창업지원팀 등 3개팀과 행정지원실을 두고 제대군인 개인에 대한 교육과 지원을 돕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안 처장은 “보훈업무가 새롭고 화끈한 게 없어 언론이 보기에는 뉴스거리가 잘 안 되겠지만, 국민통합과 국가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출처: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4&oid=036&aid=000000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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