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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 / 2대 명예이사장

The first Minister of Culture / The 2nd honorary chairman of Korea CEO Summit

1934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며 등장한 그는, 문학이 저항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을 역설함으로써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가 되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된 이래, 1972년부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을 때까지 「조선일보」 「한국일보」 「중앙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며 우리 시대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중앙일보 상임 고문 및 (재)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재직 하였다 

(YES 24 작가 소개 참조)


Born in Asan, Chungcheongnam-do in 1934, he graduated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s College of Literature and Graduate School. In 1956, came out with great sensation in the literary field by publishing 'Destruction of Idols' in the Hankook Ilbo, he became a theoretical rider of the postwar generation under the banner of "Literature of Resistance" by emphasizing that literature should perform a resistance function. Since he became an editorial writer for the Hankook Ilbo at a young age in his 20s, he has served as an editorial writer for various newspapers, including the Chosun Ilbo, the Hankook Ilbo, the JoongAng Ilbo, and the Kyunghyang Newspaper, since 1972. He served as a member of the Korean Academy of Arts, a permanent advisor to the JoongAng Ilbo, and chairman of the Korea-China-Japan Comparative Culture Research Institute.